진사(進士) 신린(臣隣)의 자로, 임진란에 조모(祖母)를 모시고 황용산(黃龍山)에 몰래 피해 숨었더니 적(賊)이 탐산(探山)하여 칼로 해(害)하려 함에 바삐 구(救)하다가 한 칼에 같이 죽었다. 처(妻) 정씨(鄭氏) 또한 스스로 목을 매어 죽음에 일이 들려 정려(旌閭)하여 부남봉황대서(府南鳳凰台西)에 있었는데 뒤에 국당(菊堂)리에 옮겨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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