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자는 후손, 호는 성암, 본관은 경주, 한 장의 아들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임금을 호종하여 평안도 강서에 머물때, 백성들은 모두 피난을 가고 고을이 텅 비어 있어 임금이 수라를 들 수 없는 형편이라 각 촌으로 돌아다니며 식량을 구하고 귀한 찬거리를 구하여 왕을 공궤하기를 60여일, 그 동안 그 곳의 내를 건너 다니기도 수천 번이라하여 내 이름도 '천도천'이라 불렀고 임금이 이를 가상히 여겨 천도천가에 비를 세워 그 공을 새겼으며 벼슬은 절충장군을 내렸다. 무덤은 선남면 신부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