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자는 진오이고 호는 옥봉이며 본관은 영양이다. 세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박사가 되어 왕의 신임을 받아 왔으며 문안공 성인 그리고 문정공 한계희 등과 교유하며 역사 편찬에 공헌하였다. 말년에는 부모를 모시기 위하여 고향 봉화에 내려왔다가 후학을 양성하는 데에 힘썼다. 저서는 많았으나 거의 없어지고 옥봉문집만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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