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화순인 최선문(崔善門)의 후예로 11세에 아버지상을 당하자 그 애도함이 어른보다 나았고 뒤에 할아버지, 어머니의 상을 연달아 당했을 때에도 3년상을 마칠 때까지 죽만 먹고 죄인으로 지내니 향리에서 참 효자라고 칭송이 자자하였다. 공은 그런 중에도 열심히 공부하여 숙종조에는 학행과 효행으로 공조좌랑(工曹佐郞)이 증직되고 복호(復戶)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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