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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의 도정 이야기

9. 도정의 기틀을 닦은 포정동과 산격동 시대

9. 도정의 기틀을 닦은 포정동과 산격동 시대
일제 식민의 상징 포정동
현 도청사 광경(포정동 청사). 1965
현 도청사 광경(포정동 청사). 1965

경치경제의 중심지 포정동 시대를 들여다 보다 1895년 경상감영이 폐지되었고, 1897년 감영부지에 도청이 자리 잡았다. 1910년 포정동은 우에마찌로 불렀으며 경상감영이 있던 곳이라 국권을 빼앗기고 가장 먼저 일본화 된 곳이다. 감영은 정청각과 선화당만 남겨지고 객사와 주변 부속 건물들이 차례로 철거되었다. 1906년 선화당에 이사청이 설치됐다. 이사청은 일제 통감부가 각 지방에 설치한 기관이며 나중에 대구시청이 된다. 화폐정리후 일제가 설립한 대구 농공은행은 지금의 대구근대박물관 자리에 들어섰다. 1910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일제강점기 13도제 아래 경상북도의 부로, 대구군을 대구부로 승격하였다. 이때 감영 중영을 허물고 2층의 새 도청사를 건립하였다. 포정동은 경상감영의 정문인 포정문에서 딴 이름이다. 포정문은 경상감영 외삼문 가운데 하나이다. 경상감영은 그 후 1965년까지 포정동 경상북도청사로 사용 되었다. 일제강점기 대구부 시가지 형성에 영향을 끼친 일본인 거류민의 도심지 점거 와 조선인 거주지역과의 차별적 지위를 얻기 위한 도시계획사업인 시구개정사업이 추진됐다. 사업은 시가지 형성과 경상북도 도청 및 주변일대를 변화시켰다. 일제강점기 시구개정사업이 추진되면서도 경상감영은 경북도청으로 사용되었다. 당시 포정동 일대는 대구의 정치, 경제의 중심지였다. 병무청 자리에 헌병대가 있었고, 옆에 대구 우체국과 대구전보국이 있었다. 서성로 쪽을 향하면서 대구경찰서와 대구측후소(기상대), 금융기관들이 줄지어 있었다. 경북도청(경상감영)에서 서성로 로 이어지는 서문로, 포정로, 향촌동은 그야말로 정치와 행정의 중심거리였다.

근대화의 표상 산격동
1959년 도청사 신축 관계철
1959년 도청사 신축 관계철

산격동에서 다시 안동으로 산격동에 자리한 경상북도 청사는 1981년에 대구시가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도청 소재지와 행정담당구역이일치하지않는상황이발생했다.대구시가직할시로승격되면서경상북도청을 이전해야한다는논의가있었지만후보지선정은지역간의갈등으로인해난항을겪었다.도청 이전문제를처음공론화한시기였다.이후에도 1991년 산격동 경북도청사는 증축 공사가 진행 되기도했다.기존지하1층,지상4층으로 건축된 콘크리트 건축물인 산격동 경북도청은 지상6 층으로 증축 되었다. 2016년 2월이 되서야 경북도청은 안동·예천에 만든 신 도시로 이전했다. 경북도청은 대구 북구 산격동에 자리를 잡은 지 50년 만에 경북안동·예천에 마련한 신청사에서 새 로운 출발을 하였다. 경북도청의 안동 이전은 1601년 경상 감영이 안동에서 대구 감영으로 옮겨간 이후 415년 만에다 시안동으로 되돌아 왔다는 역사적 의미도 지내고 있다. 2020년 대구 북구는 산격동 경북도청터의 개발 사업에 착수했다. 대구시는 특별교부금 5억을 확보하고 산격동 터 개발을 위한 기본계획 수립과 타당성 조사를 위한 용역에 착수했다. 또한 2020년 9월 16일 구의원과 도시계획 및 창업 전문가, 교통 분야 전문가, 주민대표 등으로 구성한 도청터개발추진위원회 조직했다. 대구 북구는 위원회 및 주문의견 을 수렴하여 산격동 도청터를 행복이 숨 쉬는 첨단문화 놀이터:The Smile City를 주제로 대구형 실리콘밸리 조성과 주변지역 연계 개발을 위한 사업을 제시하였다. 대구 북구는 옛 경북 도청터를 첨단과 문화 경제를 융합한 창조 혁신 지구로 탈바꿈 시킨다는 구상이다.

산격동 신청사를 건립하다 경상북도는 1958년 산격동 부지를 경북소유로 이전시키고, 1964년부터 1967년 8월까지 산격동 경북도청사 이전지에 신청사 건축공사를 진행하였다. 당시 설계를 맡은 영남대(당시 청구대) 정경운 교수(2005년 2월 작고)는 북한 출신으로 대구은행 본점, 제일모직 공장 등을 설계한 대구 현대건축 1세대였다. 경북도청사 건물의 신축 은 정경운 교수의 최고 역작이었다. 정경운 교수는 당시 대부분의 공공건축물이 목조 슬레이트 구조였던데 반해 철근 콘크리트 공법을 이용한 파격적 건축기법을 적용했다. 건립 2년 후 본청의 동편 경창청(경찰국) 청사와 서편의 별관1(의 사당) 건물을 대칭으로 지었다. 당시 경북도청사 이전은 왕조체제하에서 수백년 째 자리 잡았던 지방 관청 자리에서 벗어났다는 상징성 외에, 새로 지은 청사건물 자체가 당시로선 첨단 설계기법이 동원됐기에 근대화의 표상으로 평가 받는다. 산격동청사는 건립 시기로는 1970년 지어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보다 3년 먼저 건립된 근대건축물로 첨단 공공시설이라고 볼 수 있었다. 청사가 완공되고 1967년 10월 30일 경북도청사가 대구시 북구 산격동 1443일대로 이전하여 경상감영을 터전으로 한 경북도청의 포정동 청사 시절은 마감되었다. 당시 경북도청사의 산격동 이전은 조선왕조부터 이어진 지방관청 자리인 경상감영을 벗어나 이동했다는 상징성을 가졌다. 1980년대 초까지 산격동 청사는 대구 시내에서 가장 웅장한 자태를 뽐냈으며, 전후, 좌우 대칭, 균형 기법 등이 동원된 경북의 상징이기도 했다.

도청이전예정지 보상관련 간담회 개최. 2013 - 경상북도청 기록관리시스템(RMS) 4.22 신청사 드론촬영. 2019 - 경상북도청 영상기록관 경상북도 신청사 개청식 - 경상북도청 기록관 경북도청 산격청사 환송영상 - 경상북도청 기록관 땀으로 일궈온 산격동 반세기, 산격동의 추억, 그리고 사람들 - 경상북도청 기록관

청사 개청식. 1966 – 경상북도청 영상기록관 신청사 공사 광경. 1965 –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신청사 이전 광경. 1966 – 경상북도청 영상기록관

시세의 현황과 전망:직할시 승격에 즈음하여. 1981.
시세의 현황과 전망:직할시 승격에 즈음하여. 1981.
청사 전경.(산격동 청사) 1966
청사 전경.(산격동 청사) 1966
도청사 신축관계철 중 경상북도청사 신축공사 배치도. 1959.
도청사 신축관계철 중 경상북도청사 신축공사 배치도. 1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