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동본리 삼층석탑
- 지정 : 보물
- 한자명 : 醴泉 東本里 三層石塔
- 유형분류 :유적_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탑
- 시대 : 통일신라
- 지정일 : 1965-07-16
- 소재지 : 예천군 예천읍 동본리 474-4
예천읍(醴泉邑) 남쪽을 흐르는 한천(漢川) 북안(北岸)은 일대(一帶)가 수전(水田)인바 이 가운데 우수(優秀)한 여래(如來)의 거상(巨像)이 있고 그 서(西)쪽에 삼층석탑(三層石塔) 일기(一基)가 전(傳)한다. 사명(寺名)을 잃고 있으나 이곳에 탑상(塔像)이 전(傳)하고 있음을 보며 가람(伽藍)이 유지(遺址)했었음이 분명(分明)하다. 기단부(基壇部)는 상층(上層) 기단이하(基壇以下)가 매몰(埋沒)되어 원래(原來) 이중(二重) 기단(基壇)인지 단층(單層) 기단(基壇)인지 분명하지 않다. 현재(現在) 지상(地上)에는 상면(上面)에 경사(傾斜)가 있는 석재(石材)가 놓이고 그 위에 다시 일매석(一枚石)이 있어 상층(上層) 기단(基壇) 중석(中石)을 받게 되었는데 이와 접(接)하는 곳에 일단(一段)의 몰딩이 있다. 중석(中石)은 사매(四枚) 판석(板石)으로 구성(構成)되었고 각 면에 우주(隅柱)가 표현(表現)되고 그 사이에 사천왕(四天王) 입상(立像) 일구식(一軀式)이 능숙(能熟)한 솜씨로 양각(陽刻)되었다. 갑석(甲石)은 일매석(一枚石)으로 밑에는 부연(副椽)이 있고 상면(上面)에는 경미(輕微)한 경사(傾斜)가 있는 가운데 이단(二段)의 탑신(塔身) 받침이 있어 신라석탑(新羅石塔)의 수법(手法)을 따르고 있다. 탑신(塔身)은 옥신(屋身) 옥개석(屋蓋石)이 각층(各層) 옥신(屋身)에는 사우주(四隅柱)가 표현(表現)되었고 초층(初層) 옥신(屋身)은 장대(長大)하나 이층이상(二層以上)의 체감률(遞減率)은 온화(溫和)한 편(便)이다. 옥개석(屋蓋石)은 평박(平薄)하여 옥리(屋裏)의 받침은 일층(一層)과 이층(二層)은 각각(各各) 오단(五段)이나 삼층(三層)은 사단(四段)으로 감소(減少)되었다. 추녀 밑은 수평(水平)을 이루었고 낙수면(落水面)의 경사(傾斜)는 완만(緩慢)하나 전각(轉角)에서의 반전(反轉)은 경미(輕微)하다. 상륜부(相輪部)에는 일석(一石)으로 된 노반(露盤)과 복발(覆鉢)이 남아 있으나 후보물(後補物)인듯 하다. 이 석탑(石塔)은 규모(規模)가 크지는 않으나 짜임새를 보여준 미탑(美塔)이라 할 것이다. 석재(石材) 구성(構成)에 있어 규율성(規律性)이 있으며 탑신부(塔身部)의 옥신(屋身) 옥개석(屋蓋石)의 체감(遞減) 비율(比率) 또한 우아(優雅)하다. 기단중석(基壇中石)의 조각수법(彫刻手法) 또한 볼만하여 아직 형식화(形式化) 흔적(痕蹟)을 볼 수 없는 우수(優秀)한 솜씨를 보였다. 기단(基壇)의 상태(狀態)가 불명(不明)이지만 단층기단(單層基壇)이라 할지라도 상주(尙州), 문경(聞慶) 등 인근지역(隣近地域)에 단층기단(單層基壇)의 작례(作例)를 여러 개(個) 볼 수 있어 혹(或) 그러한 가능성(可能性)도 없지 않으나 규모(規模)의 축소(縮少)와 일부(一部)에서 간략화(簡略化)의 수법(手法)이 보임으로도 그 조성(造成)은 신라하대(新羅下代)로 추정(推定)된다.
학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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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상북도) 사진이 있는 풍경여행 : 길에서 만난 역사, 자연 그리고 고향(2010년 발행)
- 단행본 / 저자 : 지오마케팅 테마맵 사업부 / 발행처 : 지오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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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경상북도의 석탑Ⅴ(2011년 발행)
- 조사보고서 / 저자 : 국립문화재연구소 / 발행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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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국보·보물 문화유산을 찾아서 , 경상북도(경주·대구 제외)(2013년 발행)
- 단행본 / 저자 : 김광호 / 발행처 : 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