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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송죽리 개성고씨가옥

  • 지정 : 문화유산자료
  • 한자명 : 聞慶 松竹里 開城高氏家屋
  • 유형분류 :유적_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 지정일 : 2011-06-02
  • 소재지 : 문경시 산양면 송죽리 303, 581-3
문경에 開城 高氏가 처음 입향한 것은 임란 전 예문관 직제학을 지낸 高士原이며 여기에서 갈라져 나온 파들이 문경의 각 지역에 분가하여 살고 있다. 痴堂公派는 가장 큰 집으로 송죽리에 터를 잡았다. 이 집은 치당공 高浣(1863~1953)과 그의 아들 高碩林이 1933년에 건립하였다. 산자락 끝을 남북으로 길게 정지한 대지의 남쪽 끝에 나있는 대문채를 들어서면 마주하는 사랑채와 그 뒤편에 놓인 튼?형의 안채·고방채가 튼?형을 이루고 있다. 안채가 남향한 사랑채와 직교하면서 동향으로 앉혀 있다. 일반적으로 사랑채와 안채는 직·병렬로 배치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사랑채 전방 좌측인 대문채 우측의 모서리부와 고방채 뒤쪽에 측간을 두었다. 집 주위에는 블록 담장을 쌓고, 사랑채의 배면과 고방채 좌·우측에는 내외담장을 쌓아서 공간을 세 영역으로 구분했다. 배치구성을 보면 공간적·기능적으로 전통적인 유교 관습에 따른 남녀 구분이 지켜지면서도 안채로의 출입이 사랑채를 지나야 되는 등의 기본 틀이 점차 약해지고 있으며, 다음은 안채와 사랑채의 평면이 전·후퇴가 발달하고 측면에 툇간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안채는 근대 주생활상에 의한 실 면적 확대 요구를 수용하여 규모가 증대되면서 평면이 종횡으로 분할되어 겹집화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머름 없는 키 큰 창호와 고창 및 환기창, 쪽소로 장식과 종이반자 등도 19세기 후반 특히 근대기 가옥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 가옥은 이런 근대 한옥의 두드러진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으며, 또 근대기 역사와 문화의 변동을 살펴 볼 수 있는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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