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효자 이장원은 연안인 현감 구령의 현손으로 1560(명종 15)년 구성면에서 태어났다. 자는 호원, 호는 초당이었다. 공은 효성이 지극하여 초년(7, 8세)에 모친 상을 당해 거려(묘 옆에 임시로 지은 집) 3년에 어머니를 생각하여 흰죽만 계속 먹었고 슬퍼하고 예절을 갖춤이 오히려 어른보다 나은 바가 있었다. 공은 비록 집이 가난했지만 맛있는 음식을 마련해 두어 어버이의 식성에 맞게 하였으며 임진왜란에서 부모를 모시고 대항면 삼성암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는데 두 호랑이가 이들을 호위하여 끝까지 떠나지 않아 출천의 효심에 호랑이도 감동했다고 보는이는 다 감탄했다 한다.
또한 공이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여묘(묘살이)한 때는 묘 옆의 소나무가 상복을 입은 듯 희게 되었더니 만 3년이 지나니 다시 푸르게 살아났다고도 한다. 하늘에 닿는 효심에 동식물까지도 감응할 수 있었다는 것을 효자 이장원을 놓고 보면 우연이나 기적만이 아닐는지 모른다. 선조조에 음직(과거를 거치지 않고 벼슬길에 나아가는 제도)으로 충무위부호군(忠武衛副護軍)이 되었다가 1649년(인조 27) 89세로 영면하였다. 묘소는 구성면 작내리에 있으며 1897)고종 34)년에사 어서 趙絅의 알림으로 나라에서 사재감 첨정(司宰監 添丁)을 증직하고 충효당에 향사케 했던 것을 현재는 구성 하원리 경덕사로 옮겨 제사드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