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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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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복

활동시기
조선시대

상세설명

우국지사(憂國之士) 이정복(李廷馥)은 1575(선조 8)년 정양공(靖襄公) 숙기(淑琦)의 5대손으로 연안 이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벼슬은 부호군(副護軍)에 이르렀으며 호는 방초정(芳草亭)이라 했다.
공이 18세에 성묘를 갔는데 임진왜란이 터져 지례 능지산(陵旨山) 중에 있는 선영하(先塋下)에서 피난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선조가 피난길을 떴다는 소식을 듣고 곧 달려가 임금을 모시고 싶었지만 이미 적이 사방에 가득한지라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감호석(鑑湖石)에 올라가 북쪽 임금계신 곳을 바라보며 육칠년을 통곡했다. 백성되어 나랏님을 모시지 못한 죄스러움과 나라를 짓밟힌 울분을 공은 7년이나 통곡하고 통분해 했던 것이다.
난리가 끝나자 십오공신희맹록(十五功臣會盟錄)에 서명되고 그 충의를 가상히 여겨 나라에서 김천승(金泉丞)을 제수했으나 굳이 사양해 나가지 않았다.
뒤에 벼슬길에 나아갔다 귀향한 후 오직 유학(儒學)에만 전심하였는데 감호상에 방초정(芳草亭:1625,인조3)을 짓고 석학들과 교류하며 학문을 닦고 제자를 가르쳤다.
1637(인조 15)년 공은 세상을 떠났는데 묘소는 선영하에 있고 당시 공이 세웠던 방초정은 그간 서너 차례 중수를 거쳐 현재 구성면 상원리 84번지에 경상북도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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