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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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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재/목재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흠양
출생시기
시대

상세설명

이 전의 자는 숙재(叔載) 처음 호는 목재(睦齋) 뒤에 월간(月澗)으로 고쳤다. 본관은 흥양(興陽), 수인(壽仁)의 아들이고 부제학 준(埈)의 형이다. 1603년(선조 36년) 사마시에 뽑혔고,천거되어 세마(洗馬)의 벼슬이 내려졌으나 나가지 않았다. 1610년(광해군 2년) 평릉도 찰방(平陵道察訪)의 벼슬에 나아 갔다가 돌아 오니 뒤에 향민들이 선정을 기리는 거사비(去思碑)를 세웠다.

1623년(인조 1년) 지례현감(知禮縣鑒)이 되어 5년간 근무하다가 사퇴하고 고향에 돌아와 평생을 학문 연구와 지방민의 교화에 전념했다. 어려서 김각(金覺), 정국성(鄭國成), 민여해(閔汝諧)에게 글을 배우고 1580년 그의 나이 23세 때 상주 목사로부임한 류 성룡을 그의 아우인 준과 더불어 찾아가 제자가 되었고, 퇴계의 학문을 배우고 주자서(住子書)를 전심 연구하였다. 저서에는 월간집. 구색록(懼塞錄), 회암서촬요(晦庵書撮要), 성학요결(聖學要訣), 독서법(讀書法), 중류일호(中流一壺) 등이 있다. 상주 옥성서원에 제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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