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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풍인으로 자는 우구(于久)이며, 호는 태허정(太虛亭)으로 1600년(선조 33년)에 나서, 인조 2년 갑오에 진사하고, 을해(乙亥)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이었다. 1646년(인조 24년)에 연(燕)의 서장관(書掌官)에서 돌아와 창원부사로 지내다가 1656년(효종 7년)에 졸하였다. 묘는 고령군 쌍림군 귀원동 우측 산록에 있으며, 당시 학자인 귀암(歸岩) 이원정(李元楨)이 찬명(撰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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