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공은 안동인(安東人) 문경공(文景公) 진(軫)의 현손이다. 통정대부(通政大夫) 한산 군수(韓山郡守)로 재임시는 선정을 베풀어 명성이 났고 단종(端宗)의 아낌을 받기도 했다. 일찍이 재종숙인 죽림(竹林) 산해(山海:벼슬이 종부시첨정에 이르렀으나 단종 선위시 벼슬을 버렸고 이듬해 성삼문등이 단종복위를 꾀하다 발각, 투옥되자 의분을 못이겨 자결하신 분)공의 인격을 흠모, 그 밑에서 학덕을 닦은 바 있다. 공 역시 단종의 선위에 벼슬을 버리고 말았으며 복위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사세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 죄없이 멸족지화(滅族之禍)를 당할 일은 아니다." 라는 산해공의 말을 쫓아 금릉(金陵:외가가 하로의 최문혜공댁)으로 숨어 버렸다. 이후 공은 단종을 생각하여 북향을 거부했으며 사실상 금고(禁錮)상태에서 울분의 나날을 보내다 세상을 떠났다. 공의 묘소는 조마면 장암리(상장암)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