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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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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사

활동시기
고려시대

상세설명

예천(醴泉)권씨 양양(襄陽)의 사족(士族) 권 석윤(權 碩允)선생의 딸로서 1696년(肅宗 22年 丙子)에 태어났다. 천성(天性)이 정숙(貞淑) 단아(端雅)하고 기질이 유순(柔順)하였다. 어려서부터 부모께 효도하더니 성장하여 선비인 야성 정씨 정 석삼(鄭 錫三)에게 출가하였다. 남편은 본래 충효의 가문으로 증참판(證參判) 정 담(鄭 湛)장군이 임진왜란에 충절(忠節)을 세웠고 그 후에도 자손들의 효행이 빈빈(彬彬)하였으며 일월면(日月面) 가곡동(佳谷洞)에서 세거(世居)하고 있다. 권 여사는 시부모께 효행이 지극하고 부공(婦工)과 부도에 충실하였다.

권 여사는 49세에 상부(喪夫)하니 하늘이 무너진 듯 애통(哀痛)비절(悲絶)하여 몇 번이나 남편을 따라 죽고자 하였다. 어느날 대낮에 불이 나서 화염이 집을 둘러싸고 뜨거운 불길이 하늘을 찌르는 듯 근처에 사람이 있었으나 도저히 불길을 잡을 수가 없게 되었다. 권 여사는 몇 번이나 슬픈 소리를 지르더니 정신을 가다듬고 말하기를 「내가 구차하게 살아있는 것은 남편의 신주가 있기 때문인데 이제 그 신주마저 불길 속에 들었으니 내 어찌 살겠느냐?」하면서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가 묘감(廟龕: 신주 모신 곳)을 열고 신주를 꺼내어 가슴에 안고 불길 속에 타 죽었다. 불이 꺼진 뒤에 사람들이 들어가 보니 남편의 신주를 가슴에 꼭 끌어안은 채 타 죽었으나 신주는 타지 않았더라고 한다.

그 날 이들은 모두 권 여사의 열화(烈火)를 겁내지 않은 열행(烈行)을 보고 눈물을 흘려 슬퍼 탄식하였다. 신주가 비록 사람의 정혼(精魂)이 머물러 있다고 할지언정 상징(象徵)에 불과한 한 조각 목편(木片)을 산 사람같이 사모(思慕)하여 신명(身命)을 불 속에 던져 희생한다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열녀의 정절(貞節)과 불보다 더 뜨겁고 매운 열행(烈行)을 향인(鄕人)이 모두 칭송하고 애석(哀惜)해 하였다.

참고문헌 : 영양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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