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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자료실

제목
명절을 보내고 이런 생각이 듭니다
  • 등록일2003-02-04 11:45:50
  • 작성자 관리자
내용

 정말 민망하겠다. 기차에서 푹 자고 설날에는 저녁까지 하루종일 서비스해야겠네?
명절은 시댁에 서비스하는 날이다. 회사 일 때문에 31일 밤차를 타고 집에 내려간다는 말에 회사 동료 하나가 이렇게 얘길한다.


차례지내고 친정에 가봐야지. 우리 엄마도 명절 아니면 나 자주 못 보니까 많이 보고 싶어하셔.

그래도 돼? 뭐, 일찌감치 그렇게 길들이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하네. 뒤에서 욕은 먹겠지만. 하하.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다. 보고 싶은 엄마를 설날 당일 보러가는 게 왜 욕먹어야 하는 일인지. 더구나 이 사람은 결혼도 안한 세 살 아래의 아가씨다.


결혼하고 세번째 맞는 명절이지만 양가의 부모님을 모두 기쁘게 하기란 정말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직장 때문에 서울에 떨어져 살고 있는 우리를 만나는 일이 양쪽 부모님들께 얼마만한 기쁨인지 알고 있기에 더욱 고민된다. 그러나 우리의 이런 고민을 잘 해결하고 있는 모범적 케이스를 주위에서 본 적이 없어서 남편과 나는 여러가지 원칙을 세우고 조정을 하느라 많은 날을 고심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여자의 결혼을 단순히 시댁의 가족이 되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명절날 며느리나 그 며느리의 부모님을 존중하지 않고 시댁에서 음식을 하고 시댁에서 차례를 지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이 불합리한 관습이 어째서 대부분의 젊은 여성들에게조차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또한 고분고분한 며느리들의 공통점을 보면, 고분고분한 이면에 엄청난 스트레스와 갈등, 미움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며느리들이 시댁에서 받는 가장 큰 스트레스는, 시댁에서는 자신이 남편보다 열등한 존재가 되어 남자를 보살펴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끊임없이 주지시켜준다는 사실일 것이다. 좀 나은 경우라도, 남녀의 역할을 구분한다는 데에서는 아직까지 어느 시부모님도 예외적인 경우를 별로 본 적이 없다.(여자는 부엌일, 남자는 청소 등으로 역할을 지운다.)


남편과 나는 결혼 전에 이러한 일들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 끝에 평등한 결혼 생활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며, 우리의 평등한 관계를 양가에서 인정받기 위해 또 노력하자고 약속했다.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시어머님이 우리 집에 오셔도 남편은 자기가 해야 할 여러가지 집안 일을 당연하게 하는 모습을 보여드렸다. 물론 시어머님은 처음엔 조금 당황하시는 듯했지만 지금은 남편에게 설거지 담당이라는 직책을 농담삼아 말씀하시기까지 한다.


명절의 경우에도 되도록 우리의 시간을 양가에 잘 배분하려고 노력한다. 명절 전날 음식하는 것도 반반씩 도와드리려고 하고(하지만 세번의 명절을 보내는 동안 일을 도와드린 것은 양쪽 모두 얼마되지 않아 정말 죄송하다), 차례는 시댁에서 보내되 반드시 명절 당일 친정에 가도록 한다.


첫 명절 때는 곱지 않은 눈길이 오갔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우리를 이해해주시고 있다. 물론 우리가 생각하는 제일 바람직한 상황은 명절 차례를 시댁과 친정에서 번갈아 지내는 것이지만, 어르신들께서 받을 사회적 충격을 감안하여 실행 시기를 조금 늦춰 1~2년 후로 미뤄둔 상태다.


보여드리고 싶은 여러가지 모습은 많지만. 당신들께서도 나름의 가치관으로 살아온 세월이 있기에 그 시간을 존중하는 모습 또한 보여드리기 위해 아직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다. 어쨌거나 모두에게 소중한 것은 가족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내 가족이거나 남편의 가족이거나 간에 우리의 가족임에는 분명한 사실이니까.


명절을 보내고 시댁 욕하기에 바쁜 며느리들에게 말하고 싶다. 진정 가족을 사랑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거짓 웃음을 웃으며 고되게 일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 속에서도 스스로를 밝히고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이라고. 또한 지금의 갈등이 20년 후 우리의 딸들에게 더 합당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기반을 가지게 해 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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