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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

제목
조식의 칠보시( 조식 )
작성자
관리자
내용
삼국 시대의 영웅이었던 위왕 조조는 문장 출신이었지만 
건안 문학의 융성을 가져왔을 정도로 시문을 애호하여 
우수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맏아들인 비와 셋째 아들인 식도 글재주가 출중했다. 
특히 식의 시재(詩才)는 당대의 대가들로부터도 칭송이 자자했다. 

그래서 식을 더욱 총애하게 된 조조는 한때 비를 제쳐놓고 
식으로 하여금 후사를 잇게 할 생각까지 했었다. 
비는 어릴 때부터 식의 글재주를 늘 시기해 오던 차에 
후사 문제까지 불리하게 돌아간 적도 있고 해서 
식에 대한 증오심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 

조조가 죽은 뒤 위왕을 세습한 비는 후한의 헌제를 폐하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문제라 일컫고 국호를 위라고 했다. 
어느 날, 문제는 동아왕으로 책봉된 조식을 불러 이렇게 하명했다. 
일곱 걸음을 옮기는 사이에 시를 짓도록 하라. 
짓지 못할 땐 중벌을 번치 못할 것이니라. 
조식은 걸음을 옮기며 이렇게 읊었다. 
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 [煮豆燃豆 (자두연두기)] 
가마솥 속에 있는 콩이 우는구나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 
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 
어찌하여 이다지도 급히 삶아 대는가 [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 

부모를 같이하는 친형제간인데 어째서 이다지도 심히 핍박하는가라는 
뜻의 칠보시를 듣자 문제는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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