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황식품의 보양식으로의 변신 - 고령 인삼도토리수제비
숲길을 걸으면 차분해지고 행복해 진다.
그것은 숲을 이룬 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사랑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란 글이 있듯이 나무는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주고 있다.
[고령의 가을 산]
나무가 주는 아낌없는 사랑, 그중 가장 큰 덕을 지닌 것은 참나무(도토리나무)가 아닐까 싶다.
그 이름도 진짜나무라는 의미에서 ‘참나무’가 아닌가.
도토리나무는 장난감이 없던 시절 아이들의 장난감(공기놀이, 팽이놀이)이 되어 주기도 하고
먹을 것이 없던 시절 구황양식으로서 우리의 배를 채워주기도 하였으며, 겨울철이면 땔감이 되어 몸을 따뜻하게 해 주기도 한다.
어릴 적 참나무를 도토리나무, 꿀밤나무(상수리나무의 경상도 방언)라고 불렀다.
도토리는 참나무과에 속하는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등의 열매를 통칭해서 부르는 것인데, 그냥 도토리나무라고도 부르고 가장 대표적인 상수리 나무라고도 한다.
먹을 것이 모자라던 시절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 몇 그루만 있어도 마을사람들이 나누어 먹을 수 있을 만큼 도토리나무는 중요한 구황식물이었다.
상수리나무란 말의 어원도 그렇게 생겨났다.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난간 선조의 수라상에 먹을 것이 마땅치 않아 도토리묵을 자주 올렸다 한다. 선조는 환궁을 하여서도 도토리묵을 좋아하여 늘 수라상에 올랐다 하여 ’상수라’라 했고 나중에 상수리가 된 것이라 한다‘
“도토리 풍년에 농사 흉년”이라는 옛말이 있는데 실재로 가뭄이 들어 대부분의 나무들이 잎을 떨어뜨리며 힘들어 할 때 도토리 나무는 오히려 열매가 더 많이 열린다고 한다.
풍년이 들면 열매를 조금 맺고, 흉년이 들면 열매를 많이 맺어 배고픈 사람들과 산짐승, 벌레들을 먹여 살린다고 하니 ‘상수리’라는 이름을 얻을 만도 하다.
도토리는 그 많은 구황음식 가운데에서도 아주 독보적인 존재인데 다른 것들은 풍부한 열량을 주지 못하지만 도토리에는 탄수화물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열매를 맺는 시기가 가을이라서 기근이 가장 심할 때 인 봄철과 여름철에는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듬해의 기근을 대비해서라도 가을에는 이 도토리 수확에 공을 들여야 했다.
“개밥에 도토리”란 말이 있듯 도토리는 그 자체의 쓴맛으로 인해 그냥은 개도 먹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따라서 도토리를 말려 가루를 내고 쓴맛을 제거하여 묵 가루를 만들어 두었다.
도토리묵은 차츰 구황식품의 굴레에서 벗어나 완전한 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만큼 세월이 바뀐 것이다.
경북 고령에는 이 도토리를 이용해서 보양식을 만드는 곳이 있는데 그 음식이 바로 “인삼도토리수제비”이다.
20시간 이상 쇠고기 등뼈를 넣고 푹 끓여낸 육수에 인삼, 대추, 팽이버섯, 잣, 은행, 쇠고기 사태등을 함께 넣고 만드니 보기만 해도 속이 든든해 질 정도이다.
음식은 단순히 배가 고플 때 만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의 현장에서 문화적 상징이 되기도 한다. 기근을 겪는 사람의 처지에서 생존을 위해 최소한의 것이라도 먹으려고 행했던 노력들이 현대에 와서는 먹을거리의 저변을 넓히는 이유가 되었다.
먹을 것이 너무도 풍족한 요즘, 보양식으로 찾아온 도토리이지만, 도토리가 함께 나누고자 하는 덕과 지난날 헐벗은 날의 기억은 되새겨 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