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자 굵게글자 크게글자 작게인쇄

경북을 빛낸 인물

no image

황기식

활동시기
근대이후

상세설명

자인면 동부동에서 1905년 2월 3일 출생하였다. 호는 희재. 3.1운동 당시 16세의 어린 나이로 대구에서 동지부터 태극기를 받아 자인에 운반하였다. 그런 일이 있어 일경의 감시가 엄하였으므로 수원 고등농업학교(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 입학하였으나 일경의 감시와 간섭이 번거로와 중퇴하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부모를 모시었다. 1932년에 자인읍지를 편찬 발행하므로 일정하 잃어가고 묻혀가는 향토의 역사를 정리하였다.

해방 후 자인중학교에서 학문을 가르치었고 또 제2대 면의회의 의장에 당선되어 지방자치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이런 외부적인 활동보다도 어릴 때부터 익혀온 서예에 대한 열정을 저버리지 못하였다. 황씨 일가족이 혈통적으로 필재에 뛰어났고 그 아우 기완, 자녀 모두가 서예에 탁월한 재주를 발휘한 집안이었다. 일정하 일본 태동서도전에 출품하여 입상하였고 해방 후 조선 미술전람회에 입선, 조선 서화협회전에 특선하는 등 천부적 재능을 드러내었다. 한편 해동서화협회 회장, 동양예술연구회 지도위원으로서 후진 양성과 서예의 보급에 진력한 공이 크므로 제9회 경북문화상을 수상하였다. 또 동아국제미술전람회의 초대작가의 영예를 차지하였다. 1972년 7월 27일 작고하였다.

OPEN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3유형 : 출처표시필요,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 제3유형(출처표시 + 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담당부서 :
경상북도청
담당자
행복콜센터
연락처 :
1522-0120
최종수정일
2021-04-05
페이지 만족도 및 의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